민수기22장. 모압왕 발락과 점술가 발람 (난해구절 해석)
※새로운교회 한홍목사님 설교 민수기22장 강해 <발람을 부르는 발락>, <발람의 나귀가 말하다>를 글로 옮긴 것입니다.
22:1-20 발람을 부르는 발락
아모리족과의 전쟁에서 연전연승하고(21장) 이제 본격적으로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진입할 준비를 갖추게 된다.(1)
발락: 침략자, 약탈자라는 뜻. 막강한 군대를 가지고 주변 약소국들을 마구 침략하는 정복 군주임을 알 수 있다.
막강한 아모리왕, 바산왕이 이스라엘에게 전멸된 것을 보고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3)
이스라엘은 당시 장정만 60만, 인구수가 총 2-300만명 정도의 거대한 민족이었다. 이 거대한 민족이 코앞에서 진치고 있으니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스라엘은 모압과 싸울 마음이 없었다. 가나안땅으로 빨리 들어가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일찌감치 모압과 싸우지 말라고 말씀하신 적 있다. (신명기2:9) 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땅을 보장해주셨고 이스라엘과 전쟁하지 말라고 하셨었다.
그것도 모르고 두려움에 무리수를 두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사실이 아닌 것을 상상하고 퍼트린다. (4)
미디안족 : 중동 전역에서 목축업, 상업으로 활동하는 민족. 그래서 정보력이 뛰어났다.
발락이 미디안장로들과 상의한 결과 발람을 찾아가게 된다.
발람 : 복술가로써 메소포타미아에서 최고의 명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당시 복술가들은 각종 우상들, 악령들과 접신해서 사술을 베풀고 있었다. (민24:1 마술하는 사람 / 여호수아13:22 점쟁이(새번역), 점술가(개역개정) -옮긴이)
발람이 살던 브돌은 모압으로부터 640km나 떨어진 먼 곳이었는데 발락이 찾아갈 정도로 발람은 당대 매우 유명한 복술가였음을 알 수 있다.
모압 장로들, 미디안 장로들이 복채를 들고서 발람에게 찾아가서 이스라엘을 저주해줄 것을 요청한다.
발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고, 신접행위같은 주술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발람이 여호와의 이름을 사용한 것은 이스라엘의 신인 여호와의 신탁을 한번 받아보겠다는 것이었다. (8) 이사야, 에스겔 같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런데 그 날 밤 하나님이 발람에게 오셔서 말씀하신다.(9)
하나님은 왜 하나님을 믿지도 않는 복술사에게 찾아오셨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키시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왕의 꿈에 나타나신 것처럼 때로는 악한 자들에게도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려는 악한 음모를 막기 위해, 악한 사람 발람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신 것이다.
(9)"너와 함께 있는 이 사람들이 누구냐?" 하나님께서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니다. 발람의 양심을 일깨우고 계신 것이다.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질책하고자 하시는 것이다.
(11) 이스라엘은 복을 받은 백성이어서 그 누구도 그 복을 없게 할 수 없음을 분명히 말씀하심. (민24:9, 창12:3)
(13) 발람은 하나님의 말씀 중에 '그들과 함께 가지마라'는 말만 전하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면 안 된다'는 말은 안 해서 모압 고관들에게 미련을 남겼다. 발람은 모압왕의 요청대로 하고싶은 심리가 있었던 걸로 보인다.
(15-17) 더 높은 고관들이 더 많은 돈을 가지고 발람을 찾아옴.
(18,19) 12절에서 하나님께서 저주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셨고, 그래서 금은보다 하나님의 명이 중요하다고 말해놓고는, 그들을 즉시 돌려보내지않고 하룻밤 더 묵게 하는 모순적인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혹시라도 하나님이 모압왕의 편에서 말씀하실지도 모른다는 즉 자기가 바란대로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돈에 대한 욕심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딤전6:10)
(20) 발람이 모압 고관들을 따라가도록 허락하신 이유는, 욕심에 눈이 먼 발람과 끝까지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는 발락 이 두 사람의 악행을 역이용할 계획을 세우신 것이다. 악인을 바로 심판하실 때도 있지만, 그들의 악행을 역이용하셔서 하나님의 사람을 축복하는 도구로 이용하시기도 한다. 23,24장을 보면 결국 발람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말만 쏟아내고, 발락은 그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이 행보는 인간이 완강하면 허락하긴 하시지만 기뻐하지 않으실 때가 있음을 알 수 있다.
22:21-38 발람의 나귀가 말하다
(21) 아침에 일어나서 간 것으로 보아 발람은 빨리 가고 싶어했다.
(22) 이 길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길이었다. (12절에서 알 수 있다 -옮긴이)
(22) 막으려고 : (원어) 하나님의 대적이 되었다는 뜻.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길을 가면, 하나님을 적으로 두고 싸워야 한다.
(23-27) 천사를 3번이나 피했다. 미물인 나귀가 3번이나 본 것을 발람은 못 봤다. 욕심에 눈이 멀어 하나님의 경고와 진노를 보지 못 했다. 그래서 애꿎은 나귀만 때려댔다. 인생에도 장애물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실 때가 있다. (잠22:3, 1:23)
(28) 발람이 못 깨닫고 있으니 나귀를 통해 말하게 하심.
(31)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의 영안을 열어주시는 경우가 몇 번 등장한다. 하나님이 영안을 열어주시면 하나님을 보게 되고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고 엎드리게 된다.
(32,33)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길임을, 죽임당해야할 일임을 말씀하심. 하나님은 발람을 죽일 마음은 없으셨다. 나귀를 통해 브레이크를 거신 것이다. 이렇게 작은 고난을 통해 더 큰 재앙을 막으실 때가 있다. 하나님의 경고를 빨리 알아채야 하고 가려던 걸음을 멈춰야 한다.
(34) 발람은 이스라엘을 향한 저주를 막고자하는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을 것이다.
(35) 다시 허락하신 이유 : 34절에서 발람이 아직 완전히 회개한 것이 아니며 바로 돌아서서 가지 않으니까, 그의 이중적인 마음을 이용하셔서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겠다는 결정을 하신 것이다. 그러고는 허락하는 말만 하도록 조건을 다심. 발람의 입이 하나님에 의해서만 움직이도록 자물쇠가 채워졌다. 하나님은 인간의 악함조차 하나님의 선함을 이루는 도구로 이용하신다. 악한 공격들에도 두려워하지 마라.
(37,38) 발락은 뇌물의 액수가 커져서 발람이 온거라고 착각하고 있다. 오는 길에 천사에게 압도된 발람의 상태를 모르고 있다. 그런 상황이 없었다면 발람은 기고만장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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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또다른 해석을 덧붙이자면,
20절에서 가라고 허락하시고서 21-35절에서 천사가 길을 막은 이유는
모압왕의 바램대로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임을 다시 한번 주지시킨 것이다.(32)
그리고 천사에게서 죽음의 벌을 겨우 모면함으로써(33) 혹여나 하나님의 명을 어길시 반드시 죽게 될 것임을 각인시킨 것이다.
그러고서는 따라가도록 허락하신 것은 위에서 한홍목사님 설교대로 그들의 악행을 오히려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도구로 역이용하시기 위함이었음을, 23,24장에 걸쳐 발람은 이스라엘을 향해 축복의 말을 쏟아내고 발락은 그 말들을 다 듣고 알게 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신명기23:3-6참고. 발람의 말을 듣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주를 복으로 바꾸신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