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5:1-12 산상수훈 '팔복' (하나님 나라와 우리의 정체성)
※서울 삼일교회 새벽예배(2023.01.26) 성수민목사님 설교 '하나님 나라와 우리의 정체성'을 글로 옮긴 것입니다.
'팔복'이 왜 이 지점에서 등장하는지를 먼저 살펴보자.
4:17을 보면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세상을 향한 첫 가르침은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천국)가 가까이 왔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였다.
마태복음 전체의 주제는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왜 '하나님 나라' 라고 하지 않고 '천국'이라고 했을까.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쓰여졌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라고 하지 않고 '천국(하늘의 나라)' 라고 돌려서 얘기했다. 개념은 같은 단어이다.
천국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하늘에 있는 공간적인 개념이 전혀 아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다.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충만하게 임해서 모든 것이 회복된 상태,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이 올려드려지는 상태 자체를 천국이라고 하셨다. (마12:28 -옮긴이)
4:23을 보면, 예수님의 3대 사역을 요약해서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구절이다.
'가르치심, 전파하심, 고치심' 이 세 사역의 핵심내용이 '천국 복음'임을 명시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전파하시고자 하는 핵심 복음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었음을 알 수 있다.
4:24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단순히 예수님께서 인간을 불쌍히 여겨서 치유하셨다는 의미를 넘어서, 앞서(23)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는 것과 이어져서, 24절은 천국(하나님 나라)가 임재하면 인간의 죄에서 비롯된 모든 잘못된 것들이 바로잡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치유, 기적 등을 통해 예수께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가져오는 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앞에서 예수님의 모든 사역이 '하나님 나라'에 맞춰져 있었으므로, 예수님의 가르침 산상수훈도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하기 위한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왜곡된 개념을 가지고 있어서 예수님은 이것을 바로잡아주려고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가르쳐주려고 하셨다.
5:1,2을 잘 보면 예수님께서 가르치는 대상은 제자들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 나오는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은 '믿는 자들'에게 선포하는 것이다.
즉 '팔복'은 믿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에 대해 설명하시는 것이다.
좀더 자세히 설명하면
5:3에서 한국말 성경을 보면 '가난한 마음을 가지면 복이 주어진다'는 의미로 해석하기 쉽다.
이것은 자신의 공로를 앞세우고 싶은 인간의 죄성에서 비롯된 해석이다.
원문에서는 '복이 있다' 가 맨 앞에 있다.
즉 "너는 복되다. 너는 심령이 가난하다. 왜냐하면 천국이 너의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해석해야 옳다.
(히브리어, 헬라어는 강조하는 것을 맨 앞에 둔다)
따라서 이 문장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너는 복받은 상태이다' 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이미 복을 받은 자들임을 강조하고 계신 것이다.
보통 그리스도인들은 아직 복을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게 아니라 이미 복으로 충만하고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임을 강조하셨다. (심령이 가난한 것은 복받은 자의 상태, 구원의 열매로 보는 것이 옳다 -옮긴이)
다시 정리하면, 예수님은 천국 들어가는 방법을 얘기하고 계신 것이 아니고, 이미 천국백성인 사람들의 상태가 어떤지 정체성에 대해 얘기하고 계신다.
그래서 5:1-16 전체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어떤 사람들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이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누가복음18장을 보면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죄로 인해 탄식하고 자신에게는 하나님께 나아갈만한 선한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알고 엎드리는 사람을 사랑하시고 환대하신다. 그래서 예수님 주변에는 세리, 죄인, 창녀, 병자 등 천대받으나 구원을 절박하게 대망하는 자들로 가득했다.
반대로 예수님께서 배척하신 사람들은 자기의 의로 배부른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행위로 조건을 통해 스스로 잘못이 없고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따라서 팔복에서 심령이 가난한 사람, 애통하는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등은 눅18장에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의 모습과 같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위의 사람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 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스스로를 볼때 사랑받을만한 조건이 아무것도 없음을 늘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향해 복이 있는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나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사랑하셨다는 사실이다. (요한일서4:10)
여기에서 우리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어떤 조건을 갖추었거나 어떤 행위를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이 이미 우리의 가치를 결정했다.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제대로 깨닫기가 쉽지 않다.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와 크기와 넓이를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에 눈을 뜨면, 우리의 가치와 존재이유와 부르신 사명의 크기를 발견하게 된다.
에베소서1:3-6 하나님의 예정하심의 핵심은 '창세전부터 내가 너를 먼저 사랑했다'는 사실이다. (예정론은 논리로 풀려다 본질을 놓치기 쉽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은 무엇인가?
위로를 받을 것,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 의에 배부르게 될 것,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될 것, 하나님을 보게 될 것,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 천국이 너희들의 것(처음,마지막)
이것들을 종합하면 바로 '하나님의 나라(천국)' 이다.
팔복을 통해 말씀하신 복의 내용은 '내가 이미 너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주었다. 하나님의 통치, 다스림이 이미 우리에게 임했다. 하나님의 주권으로 우리를 이끌고 계신다.'
기도: 우리가 이미 복받은 자임을 기억하게 해주세요. 하나님의 사랑에 눈을 떠서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는 삶이 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