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37:1-14 절망에서 구원과 회복으로 (마른 뼈가 큰 군대로 변하는 환상)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등 선지서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을 깨닫게 하기 위해 여러 비유, 사물, 사건, 환상 등을 사용하시는데, 이번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장면은 그 모든 가르침의 절정을 이루는 것 같다.
36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겪고있는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시고(33:23-10, 36:16-21) 회복을 약속하신다.(34:11-31, 36:22-38) 37장에서는 그 가르침을 더 쉽게 이해시키고 기억하게 하기 위해 바로 이어 보여주신 장면인 것 같다.
첫 장면은 뼈들이 골짜기에 널려 있었고, 대단히 많았고, 아주 말라 있었다.(2)
그 뼈들은 바로 이스라엘 족속을 의미했다.(11)
에스겔이 시간적 순서에 의해 기록되진 않았지만 가장 가까운 시제 기록은 에스겔이 포로로 잡혀 온 지 12년째 즉 예루살렘이 함락되었을 때인 것으로 보아 예루살렘 멸망 시점으로 추정된다.(33:21)
소수의 극빈층만 남기고 모두 포로로 끌려가고 도시와 성전은 폐허가 되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의 뼈가 말랐고, 우리의 희망도 사라졌으니, 우리는 망했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11)
이 거대한 양의 완전히 말라버린 뼈들은, 이스라엘이 희망이 전혀 없는, 비참한 삶만이 남아있는 완전한 절망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마른 뼈들이 군대로 살아난 것은, 하나님께서 완전한 절망에 있는 이스라엘을 절망에서 꺼내어 다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시겠다는 회복의 약속을 그림으로 보여주신 것이었다. (12-14)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과정은 단계가 있다. 먼저 육체적, 물리적 회생이 일어나고, 이후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자 드디어 살아나서 엄청나게 큰 군대가 된다.(10)
이 생기(바람, 영, the breath(ESV))는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의미한다.(14)
그리고 생기가 그들 속으로 들어가자 그들이 살아났는데(10) 이 장면은 '성령을 너희 속에 두어서 너희가 살 수 있게 하겠다'(14)는 약속을 의미한다.
사람을 살리는 이 성령은 바로 앞 장 36장에서도 언급되었다.
'내가 너희에게 맑은 물을 뿌려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며, 너희의 온갖 더러움과 너희가 우상들을 섬긴 모든 더러움을 깨끗하게 씻어 주며, 너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고 너희 속에 새로운 영을 넣어 주며, 너희 몸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살갗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며, 너희 속에 내 영을 두어, 너희가 나의 모든 율례대로 행동하게 하겠다. 그러면 너희가 내 모든 규례를 지키고 실천할 것이다. 그 때에는 내가 너희 조상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살아서,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36:25-28)
여기서도 성령을 통한 영적 회복과 약속의 땅으로의 회귀를 약속하신다.
-성령을 주셔서 회복하게 하시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도이다. 사람의 의지가 담긴 선행 조건이 없다.
이스라엘의 죄(우상숭배, 무고한 피흘림)에 대해 분노를 쏟으시고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시간이 있고(36:18,19)
그 시간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게 하시고, 이스라엘 땅으로도 돌아가게 하겠다고 하신다.(36:25-28)
'너희가 회개하면' 성령을 주겠다가 아니라, 성령을 주시면 죄를 깨닫고 순종하는 삶이 가능하다고 하시는 것이다.
심판의 시간이 끝나면 회복의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심판도 회복도 하나님이 주도하심을 알 수 있다.
-회복을 약속하실 때에 마음과 생각의 회복 즉 영적인 회복 뿐 아니라, 이스라엘 땅의 회복도 반드시 언급하신다. (36:24,28,35,38, 37:12,14)
이것은 당시 땅을 빼앗기고 먼 남의 땅에서 포로로 살아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실질적이고 위로가 되는 말씀이었을 것이다.
또한 훗날 이것을 읽는 우리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회복과 완성에 대해 소망하게 한다.
-그리고 사람의 구원은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함을 알 수 있다.
물리적 육체적 회복이 일어나도 생기가 들어가서야 드디어 살아있는 인간이 될 수 있었다.
성령을 통해서만이 마른 뼈가 사람으로 살아나는 것처럼, 완전한 절망에서 완전한 구원으로의 변화가 가능하다.
그리고 다행히도 하나님은 인간에게 성령을 주기를 기뻐하시며 구하면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눅11:9-13)
그래서 우리는 당당하게 성령을 구할 수 있다.
-왜 마른 뼈들이 살아난 후의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라 큰 군대였을까? 그것도 엄청나게 큰 군대(10)
회복의 약속들 속에 전투와 싸움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고 풍요와 평화의 내용들 뿐이라 왜 뼈들이 살아난 형상이 군대인지 문맥상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 이유가 궁금하다.
이스라엘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주변 민족들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치실때 죽은 수많은 이스라엘 군대를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혹은 이스라엘의 회복된 모습은 군대처럼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적과 싸워 이겨 쟁취하는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겠다. (처음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해 나아갈 때의 모습)
사람의 회복은 오직 성령을 통해 가능하며, 그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그리고 구원과 회복의 때는 언제일지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도에 달렸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고 살리고 회복시키는 것을 누구보다 원하신다.
나 스스로 절망이라 느껴질 수 있는 상황 속에서도, 그리고 주변에 아무 희망이 없고 철저한 절망으로 인해 이미 끝난 인생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하나님께서 회복의 때를 주도하실 것을 기대하며 소망한다.
마른 뼈들에게 직접 말씀하지 않으시고, 에스겔에게 대언하게 하셔서 에스겔에게도 그 회복의 기쁨을 함께 경험하게 하신 것처럼, 나도 그 회복과 구원을 보는 기쁨에 동참하게 하실 것 또한 기대한다.
+이 장면에 이어서 37장 뒷부분에서 영원한 왕 예수님에 의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언약, 영원한 성소를 예언하신 것을 통해, 마른 뼈가 군대로 살아난 것처럼 죽음에서 생명으로, 절망에서 회복으로의 변화는 예수님에 의해 내 안에 이미 시작되었고 현재 누리고 있으며 앞으로 완성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