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08 삼일교회 송태근목사님의 설교 <출애굽기 강해 07 : 하나님의 지팡이> 중 해당 부분만 글로 옮긴 것입니다.

 

 

 

창4:24-26 새번역
모세가 길을 가다가 어떤 숙소에 머물러 있을 때에, 주님께서 찾아 오셔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셨다.
십보라가 부싯돌 칼을 가지고 제 아들의 포피를 잘라서 모세의 발에 대고, "당신은, 나에게 피 남편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를 놓아 주셨는데,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 할례 때문이다.

 

이전에 모세에게 이집트로 가라고 계속 말씀하셔서, 그 말씀대로 가고 있는 모세를 죽이려고 하신다.

학자들마다 이 부분에 대한 논란이 매우 많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죽이려고 하신 분은 여호와이고, 죽이려는 대상은 모세였다.

어떤 학자는 게르솜을 죽이려고 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분명 모세이다.

분명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고 한 것도 할례 때문이었고, 십보라의 행동을 봐도, 이 본문의 메인 주제는 '할례'이다.

 

할례를 다시 정리해보자.

창세기 17장에 최초로 할례가 소개된다. 

아브라함이 자녀를 약속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녀가 생기지 않으니까 여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는 잘못을 저지르고 만다.

그 때 아브라함 나이가 86세였다. 그 때부터 13년동안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침묵하신 것처럼 보인다.

성도에게 가장 무서운 형벌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는 것이다. 

그리고는 99세때 나타나신다. 나타나셨을 때 첫 단어가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였다.

이 문장은 중의적 문장이다. 

이제 다시 교제를 시작하겠다는 의미와, 아브라함이 기다리지 못 한 불신에 대한 책망의 의미도 있다.

책망을 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직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러고서 명령하신 것이 '할례'였다.

'이 집안에 거하는 객이나 종이나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99세때 아브라함 집안 남자는 모두 할례를 받는다.

생식기 끝을 잘라내는 것인데, '육체적으로 죽었다'라는 사인이다. 

그 후 아브라함은 죽은 것 같은 몸으로 이삭을 낳게 된다. 

실제로 아브라함이 육체의 실력으로 낳은 아들이 아니고 약속을 따라 낳은 자녀이다. 

이것이 이스마엘과 이삭의 큰 차이이다. 

이것을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땅의 약속과 하늘의 약속으로 구분 짓는다. 

그러니까 이스마엘과 이삭의 차이는 할례가 기준이다.

할례 전에 인간적 실력으로 저지른 것이 이스마엘이고

할례 후에 죽은 몸 같은 데서 생산한 이삭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태어난 자녀이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근본적인 삶의 기초이고 기준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는데 모세의 아들이 할례를 안 받은 것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사명인 '구원'을 위해 이집트로 출발하는 길목에서 할례를 안 받은 것이다.

그것을 지금에서야 하나님의 사자에게서 지적을 받고, 그 아내인 십보라가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고서 잘라낸 포피를 모세의 발에 갖다 대는 행위를 한다.

 

'갖다 댄다'는 말은 성경에 유일하게 또 한번 나오는 장면이 있다.

출애굽기 12장에서 이집트에서의 열째 재앙으로 장자가 죽는 무서운 심판이 일어난다. 

그때 고센지역에 모여살던 히브리 노예들만 어린 양의 피를 우슬초에 찍어서 문설주에 뿌린다. 

여기서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뿌린다(출12:22)'가 '갖다댄다(출4:25)'와 뿌리가 같은 동의어이다.

즉 유월절 밤 죽음의 그림자가 이집트를 덮었을 때 어린 양의 피 뿌림 겪은 히브리 사람들의 집안에만 죽음의 심판이 지나갔다. 

그래서 죽음과 심판이 지나간다(passover)고 해서 유월(넘어가다)절이라 한다. 

 

"당신은 나에게 피 남편입니다"

십보라가 한 이 말은 법적인 개념이다. 피로 맺여진 계약이라는 뜻이다. 

모세는 아마도 힘든 광야 생활 속에서 그것을 잊고 산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는 모세가 앞으로 펼쳐갈 구원의 역사는 인간의 조건과 행위와 능력으로 이루어질 일이 아니라는 것을 미리 암시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구원은 어린 양의 피 뿌림으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모든 자녀들의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분의 계획과 능력으로 이루어내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이 본문에서 매우 중요한 구원의 암시이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사망에서 생명으로 구원받는 데에만 통하는 신학적 원리가 아니라, 우리의 전 인생에 걸쳐 매일 붙들어야할 삶의 기초이기도 하다.

항상 그리스도의 공로와 은혜가 일상 속에서 기도 속에서 드러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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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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